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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비단 기

2021. 9. 30. 21:16 | Posted by 빠오징(寶敬)

 

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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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건강 관리에 좋은 제철 음식 3

2021. 9. 30. 21:14 | Posted by 빠오징(寶敬)

가을이 짙어지면서 일교차가 큰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물러난 더위에 반갑기도 하지만, 기온이 낮아지는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건강 관리에 주의가 필요하다.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는 면역세포의 기능을 저하시키며 뇌졸중, 심근경색 등의 심혈관 질환의 위험 또한 높이기 때문. 따라서 꾸준한 운동과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통해 건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가을에 제철을 맞이한 맛과 영양 모두 풍부한 식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올가을 건강 관리에 도움을 줄 세 가지 제철 음식을 알아본다.

가을 제철 음식

무화과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먹어 ‘여왕의 과일’이라고도 불리는 무화과는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변비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식이섬유는 대변의 양을 늘려 규칙적인 대변 활동을 도우며 장에 사는 유익균의 먹이가 되어 장내 환경 개선에도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2019년 '탐구: 과학 및 치유(Explore: The Journal of Science & Healing)' 저널에 실린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변비가 있는 환자가 하루 두 번 말린 무화과 4개를 섭취하면 통증, 팽만감, 변비 증상이 크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무화과에 함유된 폴리페놀, 섬유소, 칼륨 등은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다만, 무화과에 풍부한 비타민 K는 혈액 희석제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석류

여성의 갱년기 증상 완화에 좋다고 알려진 ‘석류’는 심장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도 도움을 준다. 미국국립보건원에 따르면 석류에 포함된 폴리페놀 등의 항산화 성분은 체내 염증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동맥 건강 증진으로 이어진다. 석류의 효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7년 약리학연구지(Pharmacological Research)’에 발표된 8건의 임상 시험 결과는 석류 주스가 수축기 혈압과 이완기 혈압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이처럼 다양한 효능을 지닌 석류지만 미국심장협회(AHA)는 섭취에 주의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경고한다. 석류는 콜레스테롤 저하제, 스타틴 등 일부 의약품이 간에서 분해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 미국심장협회의 설명이다. 또한, 와파린과 상호작용하여 혈액 희석 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약을 먹고 있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대하

대하는 무기질이 풍부한 가을 제철 음식이다. 국가표준식품성분표에 따르면 대하 100g당 날 것 기준으로 칼슘 74mg, 칼륨 340mg, 인 210mg을 함유하고 있다. 대하에 풍부한 칼륨은 체내에 남아 있는 나트륨을 배설하는 작용을 한다. 이를 통해 혈압을 올리는 호르몬인 ‘레닌’의 활성을 억제하여 혈압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새우는 식품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식품이므로 먹은 후 입안이 따끔거리거나, 피부 반응 등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면 섭취를 피하고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김가영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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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일 만

2021. 9. 22. 09:33 | Posted by 빠오징(寶敬)

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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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의 허세/토머스 커루

2021. 9. 22. 09:32 | Posted by 빠오징(寶敬)




불쌍한 가난뱅이여, 주제넘은 생각을 하다니.

그대의 초라한 오두막이, 함지 같은 집이

값싼 햇볕 속에서 또는 그늘진 샘터에서

풀뿌리와 채소로 개으르고 현학적인 덕을 기른다 하여

천상에 한 자리를 요구하다니.

거기서 그대의 바른손은

아름다운 덕들이 꽃피어오를

인간의 정열을 마음에서 잡아 뜯어

본성을 타락시키고 감각을 마비시켜

고르곤이 그랬듯이, 뛰는 인간을 돌로 변케 한다.

우리는 그대의 어쩔 수 없는 절제나

기쁨도 슬픔도 모르는

부자연스러운 어리석음의

지루한 교제는 원치 않는다.

우리는 또한 능동적인 것 위로 그대가

거짓되게 추켜올린 수동적인 꿋꿋함도

원치 않는다. 범용 속에 자리잡은 이 비천한 무리들은

그대의 비열한 근성에 어울린다. 그러나 우리가 숭상하는 것은

과잉을 용납하는 미덕들--

용감하고 관대한 행위, 왕자 같은 위엄,

전지전능의 분별력, 한계를 모르는 아량,

그리고 옛사람들도 이름을 못 붙이고

단지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테세우스 같은 유형만을 남겨놓은

저 영웅적인 용기인 것이다.

역겨운 그대의 암자로 돌아가라.

그리하여 새롭게 빛나는 전체를 보거든

그 영웅들이 어떤 분들이었던가를 알아보아라.

널브러지다와 너부러지다의 차이점

2021. 9. 10. 08:04 | Posted by 빠오징(寶敬)

널브러지다: 아무렇게나 널리 흩어지거나 흐트러지다
너부러지다 : 기운이 빠져 바닥에 넙적하게 엎드린 상태로 까부라져 늘어지다

이로쿼이 연맹Iroquois League

2021. 9. 10. 07:59 | Posted by 빠오징(寶敬)

17, 18세기에 북아메리카를 차지하기 위한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에서 전략적인 역할을 했다.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로 자처하던 이 연맹의 5개 종족은 모호크족·오나이다족·오논다가족·카유가족·세네카족이었다. 1722년 투스카로라족이 합류한 후, 이로쿼이 연맹은 영국인들에게 6개 부족 연합으로 알려졌다.

전통에 따라 휴런족 출신인 데카나위다가 1570~1600년 연맹의 조직을 맡았다. 그는 모호크족과 함께 살던 오논다가족의 추장 히아와타를 설득해서, 연맹을 승인하는 조치로 식인풍습을 버리고 '평화, 시민권력, 공정함, 위대한 법'을 받아들이게 했다고 전해진다. 주로 침략에 공동대항하려는 목적으로 연맹을 맺은 부족들은 씨족과 마을 추장들로 이루어진 공동회의를 통해 뭉쳤는데, 부족마다 투표권이 하나씩 있었고 만장일치제를 원칙으로 했다.

50명의 추장(sachem)으로 이루어진 공동재판소에서 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쟁 이외의 모든 문제를 다루었다.

이로쿼이 연맹은 동북부 삼림지대의 다른 인디언 연맹과 달랐다. 우선 조직이 잘 되어 있었고, 입장이 더 명확했으며,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또한 지도자를 뽑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의 의식은 세심하고 정성스러웠다. 식민정부를 설득해서 공동협상을 할 때도 의식은 행했으며, 뛰어난 개인보다 의식을 통한 승인에 바탕을 두는 정치적인 지혜의 전통을 소중히 했다.

행정적인 통제가 없었기 때문에 부족들이 항상 일치된 행동은 하지 못했으나, 부족 내부가 안정되어 있어 이룰 수 있었던 전쟁에서의 눈부신 승리를 통해 그러한 부족감이 메꾸어졌다.

연맹이 형성되던 1600년 무렵 5개 종족은 뉴욕 주 중부와 북부에 집중해 살았는데, 네덜란드인과의 교역을 통해 총을 공급받던 이웃 휴런족·마히칸족에 정복되지 않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1628년 모호크족이 외딴 삼림지역에서 허드슨 계곡과 뉴잉글랜드로 진출하여 마히칸족을 공격하고 다른 부족들을 위협해 물건과 화폐로 사용하던 조가비 염주를 바치게 했다.

모호크족은 영국인·네덜란드인 등과의 교역을 통해 비버 가죽을 주는 대신 화기(火器)를 사들였는데, 비버의 수가 감소하자 더 많은 비버를 확보하기 위해 연맹에 속한 부족들을 끌어들여 멀리 떨어져 살던 부족들과 전쟁을 일으키게 했다. 1648~56년 이로쿼이 연맹은 서쪽의 휴런족·티오논타티족·뉴트럴족·이리족과 싸워 승리했다. 1675년 안다스트족이 이로쿼이 연맹에 정복되었으며, 그후 안다스트족과 동맹을 맺었던 동부 수족에 속한 여러 부족들이 공격을 받았다.

1750년대가 되자 피에몬테에 사는 부족들 대부분이 이미 연맹에 정복·흡수·전멸되었다. 이로쿼이족은 17세기 후반 프랑스인들과 충돌하게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이로쿼이족의 적인 알공킨족과 휴런족의 동맹군이었기 때문에, 1648~50년 이로쿼이족은 휴런 연맹을 공격한 뒤 이후 15년 동안 뉴프랑스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감행했다.

그후 1666~87년에 연이은 프랑스 원정군의 공격으로 일시적으로 주춤했으나, 1687년 드농빌 후작의 공격을 받은 후 이로쿼이족은 다시 프랑스 영토 한가운데로 쳐들어가 1689년 몬트리올 부근 러신에서 프랑스군을 섬멸했다. 이 전쟁은 1693~96년 뉴프랑스 총독 프롱트나크 백작이 이로쿼이족과의 계속적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마침내 끝났다.

미국 독립전쟁 전까지 이로쿼이 연맹은 올버니에서 오대호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수면 높이의 이 통행로에 프랑스인들이 정착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네덜란드인·영국인 등의 통행을 봉쇄했다.

18세기에도 이로쿼이 연맹에는 이들의 적과 동맹을 맺은 프랑스인들이 가장 큰 적이었다. 이로쿼이 연맹은 올버니에 사는 영국인들로부터 유럽 상품(몬트리올보다 올버니에서 값이 더 쌌음)을 공급받았기 때문에 올버니는 절대로 공격하지 않았다. 프랑스인과 영국인 사이에서 그들이 독립을 유지한 것은 겨우 1만 2,000명의 주민 중 2,200명밖에 전투에 동원할 수 없었던 원주민으로서는 대단한 성과였다.

미국 독립전쟁 동안 이로쿼이 연맹 사이에는 불화가 생겼다. 오나이다족과 투스카로라족은 미국을 지지한 반면, 모호크족의 조지프 브란트 추장이 주도하던 나머지 부족들은 나이애가라 지역의 영국인들을 위해 싸우면서, 미국인들이 사는 여러 외딴 마을에서 많은 주민들을 학살했다. 1779년 이로쿼이 연맹은 지금의 뉴욕 주 앨마이라 부근에서 미국의 존 설리번 중장이 이끌고 온 4,000명의 원정군에게 패함으로써 사기가 크게 꺾였을 뿐만 아니라, 밭·과수원·곡창지대까지 모두 파괴당했다. 1784년의 스탠윅스 요새 2차 조약에서 패배를 인정한 후 이로쿼이 연맹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10년 후 뉴욕 주 카넌데이구아에서 맺은 조약을 통해 이로쿼이 연맹과 미국정부는 각자 이미 양도했거나 보유하고 있는 영토에서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6개 부족 가운데 오논다가족·세네카족·투스카로라족은 뉴욕에 남아 결국 인디언 보호구역에 정착했으며, 모호크족과 카유가족은 캐나다로 갔다. 1세대 후 오나이다족은 위스콘신으로 갔다.

백지 속 그림

2021. 9. 3. 09:19 | Posted by 빠오징(寶敬)

 




한 초등학교의 미술 시간.
선생님이 목장 풍경을 그려보는 수업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하나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한참이 지난 후 선생님께서 교실을 돌아보며
아이들의 그림을 보았습니다.

푸른 초원, 울타리 등 다양한 모습을
도화지 안에 그려 넣는 아이들을 향해 칭찬의 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의 그림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습니다.

이를 보고 선생님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그림을 그린 거니?"

그러자 아이는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풀을 뜯는 소의 그림이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 속에서
풀과 소를 찾을 수 없었지만 선생님은 아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풀과 소가 어디 있니?"

"선생님도 참~ 풀은 소가 다 먹었잖아요.
그리고 소는... 풀을 다 먹었는데
여기 있겠어요?"





산은 뾰족한 세모, 하늘은 연한 파란색 등
우리에게는 어느새 틀에 박힌 고정관념이
각자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늘을 보면
파란 하늘 곳곳에 분홍색, 회색 등
다양한 색이 섞여 있듯이 우리의 고정관념은
대부분 경험에 의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경험으로 굳어진 좁디좁은 생각에만
의지하지 않고 좀 더 넓은 생각으로
넓은 세상을 바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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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 명상법

2021. 9. 3. 09:17 | Posted by 빠오징(寶敬)




15초 만으로도
하루를 기쁘게 보낼 수 있다.
일하다가 잠깐 쉬고 싶을 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본다.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그냥 마음속으로 "당신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하며 기원한다. 마음속으로 미소 지으면서
하면 더 좋다. 사람에 따라 속도 차이는 있겠지만 세 번
하는 데 약 15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평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
좋아하거나 중립적인 사람을 대상으로 먼저
해보고, 자신감이 생기면 싫어하거나
불편한 사람에게도 시도해보라.


- 김병전의《이제 당신이 명상을 해야 할 때》중에서 -


* 명상의 방법은 많습니다.
15초 명상법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간이 중요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명상의 효과도 다양합니다. 비움과 채움,
이완과 몰입, 상처 치유, 몸과 마음의 평화,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지금 당장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불과 15초의 짧은 시간
미소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능합니다.
기쁨과 행복감이 뒤따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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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알레르기 비염' 예방하려면?

2021. 9. 3. 09:13 | Posted by 빠오징(寶敬)

[날씨와 건강] 창문 가급적 닫고 급격한 온도 변화 피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시간당 30㎜의 강한 비가 내리겠다. 중부지방은 흐리고 선선한 날씨가 이어질 전망이다. 아침 최저기온은 전국이 15∼22도, 한낮 최고기온은 23∼29도의 분포를 보이겠다.

☞오늘의 건강= 제법 선선해진 바람에 가을의 정취를 느끼려는 찰나,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재채기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환절기에 주로 나타나는 알레르기 비염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9월은 알레르기 비염은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달이다.

알레르기 비염은 연속적인 재채기, 흘러내리는 맑은 콧물, 코 막힘, 가려움증 등이 주요 증상인 코 점막 질환이다. 집 먼지 진드기나 꽃가루, 기후 변화 등이 원인이며 눈의 충혈, 눈과 코의 가려움, 후각 감퇴, 두통 등의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심할 경우 중이염과 부비동염, 인후두염, 결막염 등의 합병증을 야기하기도 한다.

알레르기 비염의 치료에는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 등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간혹 약국에서 파는 비염 스프레이를 수시로 뿌리는 환자가 있는데, 일반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스프레이는 '혈관 수축제'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지만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오히려 점막이 더 붓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오래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한편, 알레르기 비염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환경 자체를 피하는 것이다. 가을에는 쑥과 돼지풀 등의 꽃가루가 공기 중에 떠다니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므로 가능한 창문을 닫도록 한다.

집 온도는 20도, 습도는 45%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좋으며 침구류는 60도 이상의 뜨거운 물로 자주 세탁한다. 외출 시에는 안경,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즉시 옷을 털고 양치질과 세수를 한다. 급격한 온도 변화 및 담배 연기와 먼지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지원 기자 (ljw316@kormedi.com)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정강의 변

2021. 8. 15. 08:24 | Posted by 빠오징(寶敬)

 

  • 시대
    1126년
    북송은 금나라와 연합해 요나라로부터 연운 16주를 탈환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양국은 해상 동맹 조약을 체결했으나 송나라는 금나라와 약속한 전비를 지불하기는커녕 요나라 천조제와 비밀 동맹을 맺고 금나라를 치려 한다. 이를 눈치챈 금나라가 먼저 10만 병력을 이끌고 공격하자 송 흠종은 금나라와 굴욕적인 화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송 흠종이 화약을 이행하지 않자 금 태종은 남침을 감행하고, 결국 송나라는 멸망했다. 이로써 흠종을 비롯해 황족, 관료 등 3천여 명이 포로로 잡혔으니 이를 정강의 변이라 한다.
  •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중반까지 요나라의 배후, 즉 만주 일대는 여진족이 농경과 수렵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5세기 이후부터 만주 일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가 발해가 건국되었을 때는 발해의 지배하에 있었고, 거란이 요나라를 세웠을 때는 요나라의 영향 아래 있었다. 하지만 여진족이 모두 요나라에 편입된 것은 아니었다. 여진족은 자신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생여진(生女眞)과 요나라의 지배에 복속된 숙여진(熟女眞)으로 나누어져 각기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여진족이 강성해지기 시작한 것은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예전부터 존재한 300호를 모극(謀克), 10모극을 맹안(猛安)이라고 하는 씨족 행정 단위를 군사 구조로 재편성했다. 그리하여 1모극에서 군사 100명을, 1맹안에서 군사 1천 명을 선발했다. 여진 부족을 통합한 아골타는 1114년에 드디어 요나라에 반기를 들고, 1115년에 금나라를 건국했다. 그리고 그는 요나라를 끊임없이 공격하여 요나라의 쇠락을 부추겼다.만주 일대의 정세가 급변했다는 소식은 송나라에도 전해졌다. 이에 송나라는 금나라와 연합함으로써 요나라로부터 연운 16주를 탈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다. 1120년, 송나라 휘종(徽宗, 재위 1100~1125)은 요나라를 피해 바닷길로 만주 일대의 여진족 국가 금나라에 사신을 파견했다. 사신이 여러 차례 오고간 후 양국은 '해상 동맹(海上同盟)'이라고 부르는 조약을 체결했다. 해상 동맹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연운 16주 회복과 요나라 정벌을 염원한 송나라에게는 당시 급성장하던 금나라가 최고의 파트너였다.당시 송나라는 왕안석의 신법 실패와 당쟁, 송 휘종의 정치력 부족 및 사치로 민생이 파탄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특히 송 휘종의 과도한 예술 활동은 방랍의 난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그는 절강에 명금국(明金局)을 설치해 각종 예술품을 수집했으며, 응봉국(應奉局)을 설치해 수석과 기석을 채집했다. 이에 재상 채경과 환관 동관이 휘종을 만족시키기 위해 악랄한 수탈과 편법을 서슴지 않으니, 백성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방랍이 송에 반기를 들자 그 세력은 금세 불어났으며, 마니교 신도까지 가세하여 병력의 수는 100만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송 조정은 방랍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송나라는 요나라 공격을 위해 편성했던 15만 대군을 출동시켜 방랍을 토벌했다. 방랍의 난을 진압하는 데 1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으며, 1123년에서야 다시 요나라 공격에 나설 수 있었다.
    송나라의 안이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송나라는 금나라에게 약속한 전비를 지불하기는커녕 자신의 역량은 생각지도 않고 연운 16주의 완전한 회복만을 꿈꾸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운 16주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던 금나라를 몰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송나라는 패주하여 음산에 숨어 지내는 요나라의 천조제를 비밀리에 만나 요나라와 동맹을 맺고 금나라를 협공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1125년, 요나라의 천조제가 금나라 군사에게 잡혔고, 송나라의 모든 계획이 발각되었다. 이에 1125년에 아골타의 뒤를 이어 금나라 태종으로 즉위한 오걸매(呉乞買)는 송나라 공격을 결정하고, 10만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기에 이르렀다.화약을 맺고 금나라가 철수하자, 송 흠종은 주전파 장수들을 파면하고 구원병을 해산시킨 뒤 다시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또한 금나라에 약속한 조건들을 이행하지 않았다. 송나라가 거듭 약속을 지키지 않자 금나라 태종은 1126년에 재차 남침을 감행했다. 금나라 군대가 개봉에 이르자 송 흠종은 신병(神兵)을 조직하여 금나라를 물리친다는 곽경(郭京)의 거짓말만 믿고 성을 사수하는 군민을 모두 철수시켰다. 그러나 신병은 금나라 군대에 몰살당했고, 개봉은 약 40여 일 만에 함락되었다. 이때 송 흠종은 화친을 청하러 직접 금나라 진영을 찾았다가 포로가 되었다.정강의 변 이후 송나라의 황족 중 유일하게 북에 끌려가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휘종의 아홉 번째 아들이자 흠종의 동생인 강왕(康王) 조구(趙構)였다. 그는 남경(南京)까지 도망쳐 임안(臨安)을 수도로 삼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역사는 이를 남송(南宋)이라 칭하며, 정강의 변 이전의 송나라를 북송이라 불러 구분한다.
  • ㆍ 1123년 : 송나라가 환관 동관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요나라 공격에 나서다.
    ㆍ 1125년 : 금나라 태종 오걸매가 10만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다.
    ㆍ 1127년 : 금나라가 송 휘종과 흠종을 폐위하고, 장방창을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워 초국을 세우다.
  • 1127년, 금나라는 송 휘종과 흠종을 모두 폐위하고 송나라의 대신인 장방창(張邦昌)을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워 초국(楚國)을 세웠다. 그리고 금나라는 휘종과 흠종, 황족, 관료, 기술자 등 3천여 명을 포로로 잡아 북으로 철군했다. 이 사건은 1127년, 즉 정강 2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역사는 이를 '정강의 변'이라 일컫는다.
  • 파죽지세로 남하한 금나라 군대가 송나라 수도 개봉을 포위하자, 송 휘종은 제위를 장남 조환(趙桓), 즉 흠종(欽宗)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상황이 되어 강남으로 도망쳤다. 송 흠종은 주전파와 주화파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다 일단 주전파 이강에게 방어를 맡겼다. 이강은 여러 차례 금나라의 공격을 막았으며, 노장 종사도까지 구원병을 이끌고 개봉에 당도하자 전세가 송나라에게 완전히 불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송 흠종과 주화파는 금나라에 사신을 보내 거듭 화친을 요구했으며, 금나라는 철군 조건으로 북방의 태원(太原), 중산(中山), 하간(河間)의 땅과 엄청난 배상금, 금나라 황제를 백부로 호칭할 것 등을 제안했다. 매우 굴욕적인 제안이었으나 송나라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금나라의 요구를 수락하여 화약을 체결하고 이강을 파면시켰다.
  • 송나라 휘종휘종은 금나라와 연합하여 요나라에게 연운 16주를 탈환하기 위해 해상 동맹을 맺었다. 이후 정강의 변이 일어나자 흠종과 함께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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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송의 수도 개봉중국 북송 시대 한림학사였던 장택단이 북송의 수도인 개봉의 청명절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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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상 동맹에 따르자면 연경은 분명 송나라가 공략해야 했으나 그마저도 금나라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에 금나라는 양국의 국경선을 만리장성으로 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연경을 달라는 송나라의 제안도 무시했다. 하지만 송나라는 금나라에 약속 이행을 거듭 촉구했고, 결국 금나라의 아골타는 해상 동맹의 조약대로 연경을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골타는 연경을 텅 비우고 반환할 것이며, 전비를 지불하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금나라의 아골타는 철군하면서 연경을 약탈하고 연운 16주의 백성을 금나라로 이주시켰다. 그리하여 송나라는 폐허나 다름없는 텅 빈 7개의 성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송나라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큰 공이라도 세운 듯이 전국에 사면령을 내리고, 비석에 자신들의 공을 새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 1123년, 송나라는 환관 동관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다시 요나라 공격에 나섰다. 송나라의 목표는 연경이었다. 그런데 송나라 군대가 연경에 도달했을 때 요나라 황제 천조제(天祚帝)는 이미 도망가고 망명 정부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송나라 군대는 요나라 망명 정부의 미미한 저항마저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총사령관 동관은 연경 공략 실패에 대한 추궁이 두려워 금나라 아골타에게 원군을 요청했고, 금나라 군대는 쉽게 연경을 함락했다.
  • 같은 해, 해상 동맹 조약에 따라 금나라는 만리장성을 넘어 요나라의 중경을 향해 진격했고, 송나라 군대는 연경으로 향했다. 하지만 금나라가 요나라 공격에 진척을 보인 데 반해 송나라는 공격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송나라의 절강성 청계현에서 방랍(方臘)의 난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방랍은 원래 칠원(漆園)의 주인이었으나 청계현의 관리들이 기석 수집을 이유로 수탈을 일삼자 농민을 규합해 반란을 일으켰다.
  • 첫째, 양국은 협공하여 금나라는 중경을 공략하고 송나라는 연경을 공략한다.
    둘째, 요나라를 멸망시킨 후 양국은 만리장성을 국경으로 정하며, 연운 16주는 송나라에 귀속시킨다.
    셋째, 송나라는 지금까지 요나라에게 바치던 세공을 금나라에게 바친다.
  • 여진족여진족은 만주 일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민족으로, 요나라에 반기를 들고 금나라를 건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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