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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의 변

2021. 8. 15. 08:24 | Posted by 빠오징(寶敬)

 

  • 시대
    1126년
    북송은 금나라와 연합해 요나라로부터 연운 16주를 탈환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양국은 해상 동맹 조약을 체결했으나 송나라는 금나라와 약속한 전비를 지불하기는커녕 요나라 천조제와 비밀 동맹을 맺고 금나라를 치려 한다. 이를 눈치챈 금나라가 먼저 10만 병력을 이끌고 공격하자 송 흠종은 금나라와 굴욕적인 화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송 흠종이 화약을 이행하지 않자 금 태종은 남침을 감행하고, 결국 송나라는 멸망했다. 이로써 흠종을 비롯해 황족, 관료 등 3천여 명이 포로로 잡혔으니 이를 정강의 변이라 한다.
  •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중반까지 요나라의 배후, 즉 만주 일대는 여진족이 농경과 수렵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5세기 이후부터 만주 일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가 발해가 건국되었을 때는 발해의 지배하에 있었고, 거란이 요나라를 세웠을 때는 요나라의 영향 아래 있었다. 하지만 여진족이 모두 요나라에 편입된 것은 아니었다. 여진족은 자신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생여진(生女眞)과 요나라의 지배에 복속된 숙여진(熟女眞)으로 나누어져 각기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여진족이 강성해지기 시작한 것은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예전부터 존재한 300호를 모극(謀克), 10모극을 맹안(猛安)이라고 하는 씨족 행정 단위를 군사 구조로 재편성했다. 그리하여 1모극에서 군사 100명을, 1맹안에서 군사 1천 명을 선발했다. 여진 부족을 통합한 아골타는 1114년에 드디어 요나라에 반기를 들고, 1115년에 금나라를 건국했다. 그리고 그는 요나라를 끊임없이 공격하여 요나라의 쇠락을 부추겼다.만주 일대의 정세가 급변했다는 소식은 송나라에도 전해졌다. 이에 송나라는 금나라와 연합함으로써 요나라로부터 연운 16주를 탈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다. 1120년, 송나라 휘종(徽宗, 재위 1100~1125)은 요나라를 피해 바닷길로 만주 일대의 여진족 국가 금나라에 사신을 파견했다. 사신이 여러 차례 오고간 후 양국은 '해상 동맹(海上同盟)'이라고 부르는 조약을 체결했다. 해상 동맹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연운 16주 회복과 요나라 정벌을 염원한 송나라에게는 당시 급성장하던 금나라가 최고의 파트너였다.당시 송나라는 왕안석의 신법 실패와 당쟁, 송 휘종의 정치력 부족 및 사치로 민생이 파탄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특히 송 휘종의 과도한 예술 활동은 방랍의 난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그는 절강에 명금국(明金局)을 설치해 각종 예술품을 수집했으며, 응봉국(應奉局)을 설치해 수석과 기석을 채집했다. 이에 재상 채경과 환관 동관이 휘종을 만족시키기 위해 악랄한 수탈과 편법을 서슴지 않으니, 백성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방랍이 송에 반기를 들자 그 세력은 금세 불어났으며, 마니교 신도까지 가세하여 병력의 수는 100만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송 조정은 방랍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송나라는 요나라 공격을 위해 편성했던 15만 대군을 출동시켜 방랍을 토벌했다. 방랍의 난을 진압하는 데 1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으며, 1123년에서야 다시 요나라 공격에 나설 수 있었다.
    송나라의 안이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송나라는 금나라에게 약속한 전비를 지불하기는커녕 자신의 역량은 생각지도 않고 연운 16주의 완전한 회복만을 꿈꾸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운 16주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던 금나라를 몰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송나라는 패주하여 음산에 숨어 지내는 요나라의 천조제를 비밀리에 만나 요나라와 동맹을 맺고 금나라를 협공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1125년, 요나라의 천조제가 금나라 군사에게 잡혔고, 송나라의 모든 계획이 발각되었다. 이에 1125년에 아골타의 뒤를 이어 금나라 태종으로 즉위한 오걸매(呉乞買)는 송나라 공격을 결정하고, 10만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기에 이르렀다.화약을 맺고 금나라가 철수하자, 송 흠종은 주전파 장수들을 파면하고 구원병을 해산시킨 뒤 다시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또한 금나라에 약속한 조건들을 이행하지 않았다. 송나라가 거듭 약속을 지키지 않자 금나라 태종은 1126년에 재차 남침을 감행했다. 금나라 군대가 개봉에 이르자 송 흠종은 신병(神兵)을 조직하여 금나라를 물리친다는 곽경(郭京)의 거짓말만 믿고 성을 사수하는 군민을 모두 철수시켰다. 그러나 신병은 금나라 군대에 몰살당했고, 개봉은 약 40여 일 만에 함락되었다. 이때 송 흠종은 화친을 청하러 직접 금나라 진영을 찾았다가 포로가 되었다.정강의 변 이후 송나라의 황족 중 유일하게 북에 끌려가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휘종의 아홉 번째 아들이자 흠종의 동생인 강왕(康王) 조구(趙構)였다. 그는 남경(南京)까지 도망쳐 임안(臨安)을 수도로 삼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역사는 이를 남송(南宋)이라 칭하며, 정강의 변 이전의 송나라를 북송이라 불러 구분한다.
  • ㆍ 1123년 : 송나라가 환관 동관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요나라 공격에 나서다.
    ㆍ 1125년 : 금나라 태종 오걸매가 10만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다.
    ㆍ 1127년 : 금나라가 송 휘종과 흠종을 폐위하고, 장방창을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워 초국을 세우다.
  • 1127년, 금나라는 송 휘종과 흠종을 모두 폐위하고 송나라의 대신인 장방창(張邦昌)을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워 초국(楚國)을 세웠다. 그리고 금나라는 휘종과 흠종, 황족, 관료, 기술자 등 3천여 명을 포로로 잡아 북으로 철군했다. 이 사건은 1127년, 즉 정강 2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역사는 이를 '정강의 변'이라 일컫는다.
  • 파죽지세로 남하한 금나라 군대가 송나라 수도 개봉을 포위하자, 송 휘종은 제위를 장남 조환(趙桓), 즉 흠종(欽宗)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상황이 되어 강남으로 도망쳤다. 송 흠종은 주전파와 주화파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다 일단 주전파 이강에게 방어를 맡겼다. 이강은 여러 차례 금나라의 공격을 막았으며, 노장 종사도까지 구원병을 이끌고 개봉에 당도하자 전세가 송나라에게 완전히 불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송 흠종과 주화파는 금나라에 사신을 보내 거듭 화친을 요구했으며, 금나라는 철군 조건으로 북방의 태원(太原), 중산(中山), 하간(河間)의 땅과 엄청난 배상금, 금나라 황제를 백부로 호칭할 것 등을 제안했다. 매우 굴욕적인 제안이었으나 송나라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금나라의 요구를 수락하여 화약을 체결하고 이강을 파면시켰다.
  • 송나라 휘종휘종은 금나라와 연합하여 요나라에게 연운 16주를 탈환하기 위해 해상 동맹을 맺었다. 이후 정강의 변이 일어나자 흠종과 함께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 갔다.
  •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 북송의 수도 개봉중국 북송 시대 한림학사였던 장택단이 북송의 수도인 개봉의 청명절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다.
  •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 해상 동맹에 따르자면 연경은 분명 송나라가 공략해야 했으나 그마저도 금나라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에 금나라는 양국의 국경선을 만리장성으로 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연경을 달라는 송나라의 제안도 무시했다. 하지만 송나라는 금나라에 약속 이행을 거듭 촉구했고, 결국 금나라의 아골타는 해상 동맹의 조약대로 연경을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골타는 연경을 텅 비우고 반환할 것이며, 전비를 지불하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금나라의 아골타는 철군하면서 연경을 약탈하고 연운 16주의 백성을 금나라로 이주시켰다. 그리하여 송나라는 폐허나 다름없는 텅 빈 7개의 성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송나라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큰 공이라도 세운 듯이 전국에 사면령을 내리고, 비석에 자신들의 공을 새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 1123년, 송나라는 환관 동관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다시 요나라 공격에 나섰다. 송나라의 목표는 연경이었다. 그런데 송나라 군대가 연경에 도달했을 때 요나라 황제 천조제(天祚帝)는 이미 도망가고 망명 정부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송나라 군대는 요나라 망명 정부의 미미한 저항마저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총사령관 동관은 연경 공략 실패에 대한 추궁이 두려워 금나라 아골타에게 원군을 요청했고, 금나라 군대는 쉽게 연경을 함락했다.
  • 같은 해, 해상 동맹 조약에 따라 금나라는 만리장성을 넘어 요나라의 중경을 향해 진격했고, 송나라 군대는 연경으로 향했다. 하지만 금나라가 요나라 공격에 진척을 보인 데 반해 송나라는 공격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송나라의 절강성 청계현에서 방랍(方臘)의 난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방랍은 원래 칠원(漆園)의 주인이었으나 청계현의 관리들이 기석 수집을 이유로 수탈을 일삼자 농민을 규합해 반란을 일으켰다.
  • 첫째, 양국은 협공하여 금나라는 중경을 공략하고 송나라는 연경을 공략한다.
    둘째, 요나라를 멸망시킨 후 양국은 만리장성을 국경으로 정하며, 연운 16주는 송나라에 귀속시킨다.
    셋째, 송나라는 지금까지 요나라에게 바치던 세공을 금나라에게 바친다.
  • 여진족여진족은 만주 일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민족으로, 요나라에 반기를 들고 금나라를 건국했다.
  •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중앙은행 수입 연료 보조 중단 선언에 연료 가격 폭등 우려
발전소 가동 중단에 따른 정전도 심해질 듯..정부-중앙은행 상호 비난

레바논 베이루트 시내 주유소에 줄을 선 스쿠터 이용자들 [AFP=연합뉴스]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는 지중해 연안 중동국가 레바논에 생활필수품 대란이 벌어졌다고 현지 언론과 외신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레바논 전역의 주유소에는 전날부터 연료를 구하려는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주유소 입구부터 줄을 선 차량으로 인근 도로는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연료를 구하려는 차량이 몰리면서 마비된 레바논 다무르의 주유소 인근 도로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9일에는 레바논 북부의 한 주유소에서 연료를 먼저 사려던 사람들의 다툼이, 흉기와 총기까지 동원된 살벌한 싸움으로 커지면서 1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도시의 빵집도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주식인 빵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늘어섰고, 아직 빵을 사지 못한 사람들은 먼저 빵을 구한 사람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베이루트 남쪽 교외에 위치한 빵집에 몰려든 사람들 [AFP=연합뉴스]

줄을 선 사람들 사이로 빵을 구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9년 시작된 레바논의 경제위기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 속에 심각해진 위기는 작년 8월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의 후폭풍과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경제활동 위축이 더해지면서 악화일로다.

세계은행(WB)은 최근 레바논의 경제 위기를 19세기 중반 이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심각하고 장기적인 불황으로 진단했다.

경제 위기 속에 현지 화폐인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는 90% 이상 폭락했다.

1997년 설정한 고정 환율에 따라 1달러의 가치는 1천507 파운드지만, 암시장 환율은 이미 오래전에 1달러당 2만 파운드를 넘어섰다.

현지 화폐 가치 급락으로 수입 물품 대금 지급이 어려워지면서, 석유와 의약품, 밀가루 등 수입품의 가격이 치솟았다.

단전으로 대부분 불이 꺼진 베이루트의 건물들 [로이터=연합뉴스]

연료 부족은 발전소 가동에 차질을 빚어 단전으로 이어졌고, 의약품 수입 지체는 코로나19 와중에 약국과 병원의 비자발적인 폐업을 불렀다.

파운드화 가치 폭락에 대한 항의로 지난 6월 문을 닫은 베이루트의 약국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레바논 중앙은행은 지난 11일 석유 등 수입 연료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이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환율 폭등으로 보유 외환을 축내는 보조금을 더는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중앙은행의 설명인데, 업계에서는 보조금이 끊길 경우 휘발유 등 연료 가격이 4배가량 폭등할 것으로 전망한다.

결국 이런 상황을 우려한 레바논 주민들은 가격이 오르기 전에 연료를 구하기 위해 주유소로 몰려들고, 연료 가격 상승이 주식인 빵값에도 영향을 미치거나 아예 빵집까지 문을 닫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분노한 시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비난하면서 주요 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이루트 남부 쿠자이에서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시위대가 도로를 봉쇄한 모습 [epa=연합뉴스]

레바논 제과점협회의 알리 이브라힘 회장은 "연료(경유)가 바닥난 많은 빵집이 내일부터 문을 닫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폭발 참사의 책임을 지고 내각이 총사퇴한 이후 1년 넘게 새 내각을 구성하지 못해 '국정 공백'을 부른 정치권은 책임 공방만 벌이고 있다.

미셸 아운 대통령이 긴급 각료회의 소집을 요청했지만, 1년 전 사퇴한 뒤 임시 총리직을 수행해온 하산 디아브는 이를 거부했다. 사퇴한 임시 총리가 각료회의를 주재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보조금 중단에 반대하는 정부는 중앙은행이 독단적인 결정을 했다고 비난하지만, 리아드 살라메흐 중앙은행장은 정부가 사전에 보조금 중단 결정을 알고 있었다고 맞받았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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