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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승

2016. 5. 21. 21:39 | Posted by 빠오징(寶敬)

다른 표기 언어 鄭寅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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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시 1897. 5. 19, 전북 장수
사망일시 1986
국적 한국

요약 조선어학회 상임이사로 〈큰사전〉 편찬에 전념했으며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수정 및 기초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 이후 국어 강습과 교재 편찬에 힘썼다. 국어심의회 위원, 국정교과서 편찬 심의위원, 한글전용특별심의회 위원으로 일하는 등 주로 국어교육과 관계된 방면에서 활동하는 한편 전북대학교 교수 및 총장, 중앙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정인승의 문법체계는 최현배의 문법체계에 준거하여 품사와 문장성분을 상호 연관시키는 것이었으나 지정사를 조사에 넣고 수사·대명사를 따로 설정하지 않은 7품사(이름씨·움직씨·그림씨·매김씨·어찌씨·느낌씨·토씨) 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는 국어교육을 중시하여 여러 가지의 문법서를 저술하고 1963년 7월 15일 학교문법의 품사체계와 용어를 통일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등 학교문법의 통일과 확립에 공헌했다.

본관은 동래. 호는 건재. 아버지 상조와 어머니 송성녀의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을 배우는 한편 신학문을 혼자 익히기도 했으며 1918년 서울 연정학원과 중동중학을 거쳐 1921~25년 연희전문학교에서 수학했다. 이어 1935년 3월까지 전북 고창고등보통학교에서 조선어와 영어를 가르쳤다.

1935년 4월 이후 조선어학회 상임이사로 〈큰사전〉 편찬에 전념했으며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수정 및 기초위원으로 활동했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8·15해방과 더불어 출감한 후 학회활동을 계속했다. 해방 이후 국어 강습과 교재 편찬에 힘썼다.

문교부 학술제정 위원을 비롯하여 문교부의 문법용어제정위원회 위원, 국어심의회 위원, 국정교과서 편찬 심의위원, 한글전용특별심의회 위원으로 일하는 등 주로 국어교육과 관계된 방면에서 활동하는 한편 전북대학교 교수 및 총장, 중앙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면서 직접 교편을 잡기도 했다. 공로상과 학술원상 및 건국공로훈장, 중앙대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인승의 문법체계는 최현배의 문법체계에 준거하여 품사와 문장성분을 상호 연관시키는 것이었으나 지정사를 조사에 넣고 수사·대명사를 따로 설정하지 않은 7품사(이름씨·움직씨·그림씨·매김씨·어찌씨·느낌씨·토씨) 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다.

정인승의 문법교과서의 체재는 '모두풀이·씨의풀이·월의풀이'의 3부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품사론에 해당하는 '씨의풀이'가 가장 강조되고 있다. 이는 당대 문법연구의 경향과 일맥 상통하는 점이다. 이밖에 본격적인 조어법은 아니나 어근과 접사를 중심으로 단어 형성법을 다룬 것이 주목할 만하다. 특히 그는 국어교육을 중시하여 여러 가지의 문법서를 저술하고 1963년 7월 15일 학교문법의 품사체계와 용어를 통일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등 학교문법의 통일과 확립에 공헌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한글독본〉(1946)·〈한글문답〉(1950) 등의 한글관계 저서와 〈표준중등말본〉(1949, 뒤에 〈표준 우리말본〉으로 개칭되어 출간되기도 함)·〈표준중등말본〉(1956, 1949년 출판된 책과 제목은 같으나 내용은 다름)·〈표준고등말본〉(1956) 등의 교과서와 교수지침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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